21s
그 남자 그 여자 - 드라마처럼 본문
-그 남자-
드라마에선 그렇잖아.
그녀의 연락을 받고
급히 차를 몰고 가는 남자가
주차를 못해서 쩔쩔매는 일은 절대 없고,
갑자기 쓰러진 주인공이
병실이 없어서
병원 복도에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없지.
꼭 알아야 할 서로의 소식은
갑자기 등장한 누군가가 꼭 알려주고,
그래서 주인공들은
몇 번쯤 어긋나더라도 결국은 만나게 되고,
결국은 사랑을 하게 되고..
오늘, 열 몇 편으로 마침내 행복해지는 미니시리즈를 보면서
처음으로 인생이란 게… 참 아득하고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기도도 해봤어.
만약 나한테 딱 한 번이라도
드라마처럼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 한 번만
아주 뻔한 드라마처럼,
눈 오는 날, 우연히 다시 만나자
혹시라도 유리창 너머로
서로 안타깝게 스쳐 가는 일이 없도록,
내가 잘 알아볼게
그 때.. 니가 내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면,
날 다시 만나만 준다면,
다시는 오해 같은 거 생기지 않도록
내가 정말 잘할게.
-그 여자-
텔레비전에서 그 드라마를 다시 보여 주더라
너는 유치하다고,
저렇게 말도 안 되는 걸 왜 보느냐고 했고
난 그래도 재미있다고 우기던..
만약, 우리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작은 오해로 크게 싸우고,
서로 손톱을 세워서 마음을 할퀴고,
그러다 결국 헤어져 버린 이야기.
한 순간 모든 오해가 풀리는
극적인 반전도 없고,
눈물이 흐를 만큼 아픈 이별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헤어져 버렸다는 이야기.
아무도 보지 않겠지?
나라도 안 볼 거야, 재미 없을 테니까.
글쎄.. 지금이라도 우리가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내가 너한테
그 땐 오해해서 미안했다고,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펑펑 울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다시
나란히 눈 내리는 길을 걷게 된다면..
그건 드라마가 될 수 있을까?
..니 말대로, 난 참 유치한가 보다
아직도 이렇게,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이나 꿈꾸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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