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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실제로 겪었던 지하철 성추행 사건과 그 결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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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실제로 겪었던 지하철 성추행 사건과 그 결말

까모야 2011. 7. 29. 09:52

 

벌써 작년이나 된 이야기지만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성추행 기삿글들을 보며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여자로서 어찌보면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일이긴하지만 기사화 된 내용으로만 사건을 접하시는 분들에게 피해자의 입장으로서 얘기하고 싶었습니다어떻게 성추행 사건들이 일어나고 처리되는지 여자들의 노출의 탓으로 돌리시는 분들께 꼭 전해드리고 싶은 얘기입니다.

 

작년 6, 그날도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출근을 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흐린 날씨에 비가 떨어질 것 같은 날로 기억합니다. 아직 20대 초반 예쁜 원피스도 입을 수 있고 남의 시선을 끄는 옷도 있었지만 그날은 머리를 감고 덜 말린 채로 나와 긴 흰색 롱후드티와 검정색 칠부바지를 입고 나왔습니다.

 

부천역, 8 10분쯤 도착한 용산 급행 전철을 탔습니다. 당연히 아침 출근시간이라 손도 못 움직일 정도로 사람들에 밀려 타면서 가고 있었죠. (인천 사시는 분들, 지옥철이라 불리는 1호선을 아시는 분들 다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오늘도 숨막힌 채 출근해야겠구나…’ 옴짝달싹도 못한 채 구로역에서 어떤 남자분이 제게 손짓하며 아가씨 내려보라고!” 고함을 지르시더라구요. (이어폰을 낀 터라 입모양을 보고 알았습니다.) 구로역에서 내리면 지각인데 했지만 왠지 불길한 기운이 감싸며 내리면 안될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내렸습니다. 처음에는 이 아저씨가 왜 이러나 그랬는데 무슨 신분증 같은걸 보여주셨고 설마 소매치기 당했나??’ 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남자가 같이 끌려 나왔습니다. 그 지하철 칸에 모든 사람들이 저와 아저씨들을 향했던 게 아직도 기억나네요.

 

이어폰을 빼고 신분증을 보여 준 아저씨에게서 들은 말이

"이 남자(끌려나온 남자)가 아가씨 성추행하고 있는 거 몰랐어요?"

자신과 동행하고 있는 두 사람은 사복형사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때 끌려 나온 남자는 눈이 퀭한 상태로 바지쪽이 젖어 있었죠….

 

지금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정말로 이분들(남자 3)이 사복형사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 혹시 지금 나를 따라오라며 이상한 일을 벌이려는 게 아닐까 의심을 했지만 이분들을 따라가 도착한 곳이 구로역 역무실이었습니다. , 이때부터 이게 진짜 내 앞에 닥친 일이구나 실감했습니다.

 

그제서야 둔한 몸이 덜덜덜.....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부천역에서부터 잠복근무를 하던 사복형사님들은 직감적으로 성추행범으로 의심되는 사람 움직임을 감지하고 계셨고 원래 다른 여자 뒤에서 성추행을 시도하려던 그 남자가 역곡역에서 사람들이 밀치는 바람에 운이 나쁘게도 제 뒤에 와서 제가 그 표적이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어폰을 낀 상태였고 워낙에 붐비는 지하철이라 늘 그래왔듯이 사람이 많아서 공간이 좁은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들고 있는 우산이 제 뒤에 우산이 콕콕 찌르고 있구나 했는데 그게 우산이 아니었던 겁니다. 대충 무엇인지 짐작하시겠죠? 자위행위였습니다ㅠㅠ 알고 보니 범행을 저지른 그 남자 뒤에는 자리가 널널했고 저와 밀착한 상태로 그런 저질스런 짓을 하고 있던 것입니다. 물론 그 남자 뒤에서는 사복형사님이 이를 다 지켜보고 있었구요.

 

역무실에 도착해 사복형사님은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며 고소 혹은 훈방조치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황근데 급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여기서 용서해주면 분명 또 그런 짓을 할거다!”

 

형사님 도움을 받아 고소장을 접수했고 계속 제 얼굴을 보면서 사과하고 싶다는 그놈때문에 보기도 싫었지만(그 정신 나간 표정을 잊혀지지 않아요) 칸막이 가리고 하는 말 몇 마디 들어주고 했습니다.

형사 아저씨한테 조언 좀 달라고 했더니 얘기론 전과 없고 초범이고 그놈말대로 성병이 있는 거 같다고 이런 일 많이 해봐서 아는데 진짜인 거 같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저든 어떤 여자든 자기 욕구를 풀기위해 이런 일을 감행했다는 것 자체가 용서가 안됐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날 고소장을 쓰고 그 더러운 옷차림을 그대로 한 채 뒤늦게 출근을 했고 회사에는 연락을 취한터라 사람들의 많은 질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가족들은 그런놈이 다있냐며 분노에 바들바들 떨었고, 며칠은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 왠지 모를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었죠(저의 경우는 무난한 편에 속하지만 실제로 트라우마 생기는 여성들도 많습니다)


 

-결말-

다른 형사님들이 그놈을 취조한 결과 37살에 딸이 둘이나 있는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어떻게 딸이 둘씩이나 있는 아빠란 사람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요? 자기 딸은 애지중지하고 세상 다른 여자들은 그따위로 삼는지

 

고소장이 접수된 뒤 며칠 후 그놈과 저의 중간 사이에서 합의를 유도하는 부서에서 전화가 왔고 그놈은 합의를 하고 싶다며 저에게 합의금 50만원으로 합의하고 싶다는 뜻을 그 부서를 통해 전달했습니다. (피해자를 배려한 조치라고 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얼렁뚱땅 넘기려는 태도에 처음에는 합의를 거절했습니다. 기껏해야 20대초반의 나를 어리게 봐서 만만하다 생각한 거겠죠. 솔직히 말해서 제가 술집 여자도 아니고 아니 술집여자들과 놀아도 그 돈보다 더 많이 쓰겠죠. 범죄라는 사실을 망각한 그 태도가 괘씸했습니다.

 

그런데 형사님한테 듣기론 내가 합의하지 않으면 그놈에게는 성추행범(초범)이라는 꼬리표가 달릴 것이고 회사에도 바로 연락이 닿아 짤릴 것이다. 더불어 그 어린 딸들에게도 성추행범이라는 아빠가 생길테고 뭐니뭐니해도 그놈의 아내 되는 사람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어쩌다 그런 남자를 만나게 된 건지같은 여자로서 안타깝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벌금형으로 끝나면 모르겠건만나로 인해 누군가의 가족이 망가질까봐 또 법원 판결 후 제 연락처를 찾아올 수도 있다고 하니 겁이 났습니다.

 

합의 만료기간이 다가오니 베짱시으로 벌금형만큼이란 말에 냉큼 들어주더군요. 두렵긴했나봅니다. 결국 고소취하를 위해 서울역까지 다녀왔습니다.

 


언급 드렸다시피 제 옷차림은 전혀 노출이 없었고 누군가의 시선을 끄는 옷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그런 옷을 입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제 책임으로 돌렸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통계를 보니 성추행범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여자들에게 자극은 받지만 그런 여자들은 범행대상으로 노리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의 눈을 끌지 않는 여자를 대상(약해 보이는 대상)으로 일을 벌인다고 합니다. 그게 범행에 더 쉽거든요. 제 글을 보고 여자들의 탓이라 몰고 가시는 분들 제발 없길 바랍니다. 여자들의 원인제공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돈을 훔치겠다고 상상을 하고 실천 하는 일이 옳은 게 아니듯 성추행은 분명 합리화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쓰니 손이 덜덜덜 떨리는 걸 보니 분노와 두려움이 다 가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자분들 술에 취해 몸도 못가눌 정도로 취해 있으면 성추행범들이 노리는 최적의 대상이라는 거 늘 아시고 적어도 그런 분들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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